
어렸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여름방학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생일까지 기다리는 한 달은 몇 달처럼 느껴졌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무척 길었다.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고, 일주일은 지금의 한 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분명히 새해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봄이 지나고, 여름이 끝나고, 연말이 다가온다. 달력을 볼 때마다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직장인이 되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올해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12월이네.”
“시간이 예전보다 두세 배는 빠르게 가는 느낌이야.”
정말 시간이 빨라진 걸까?
물론 실제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
1분은 언제나 60초이고 하루는 항상 24시간이다.
달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경험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학교에 처음 입학하고, 처음 자전거를 배우고, 처음 여행을 가고, 처음 친구를 사귀고, 처음 시험을 치른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만나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저장한다.
처음 보는 장소, 새로운 냄새, 낯선 사람, 새로운 감정까지 모두 기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반대로 성인이 되면 하루의 패턴이 비슷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점심을 먹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집에서 쉬고 잠든다.
다음 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주일도 비슷하고 한 달도 비슷하다.
뇌 입장에서는 이미 익숙한 정보가 반복되는 것이다.
새롭게 저장해야 할 내용이 적어지니 지나간 시간을 짧게 기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처음 가 본 해외여행은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다니는 출근길은 한 시간이 걸려도 금방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익숙한 길은 뇌가 많은 정보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나이에 따른 시간의 비율이다.
열 살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다.
하지만 쉰 살인 사람에게 1년은 인생의 50분의 1에 불과하다.
같은 1년이라도 상대적으로 훨씬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 중 하나다.
흥미로운 것은 바쁜 사람일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지만,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많은 기억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떠난 일주일을 생각해 보자.
여행 중에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 같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수많은 추억이 남아 있다.
반면 특별한 일 없이 보낸 한 달은 금방 지나갔지만 기억은 거의 남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결국 시간의 길이는 시계가 아니라 기억이 결정하는 셈이다.
기억이 많을수록 길게 느껴지고, 기억이 적을수록 짧게 느껴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새로운 경험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평소 가지 않던 카페에 가는 것.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것.
다른 길로 산책하는 것.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읽는 것.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뇌는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그 하루는 조금 더 길게 기억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스마트폰의 영향도 있다.
잠깐만 영상을 보려고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 있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짧은 영상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시간 감각이 흐려진다.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받지만 깊게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용 중에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중에는 무엇을 봤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누군가와 오래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다녀온 날은 시간이 더 풍부하게 남는다.
기억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늘릴 수는 없다.
대신 시간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드는 방법은 있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고, 하루를 의식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그냥 찍는 것보다 그 순간을 천천히 바라보는 사람이 더 오래 기억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휴대폰만 보며 먹는 것과 맛을 음미하며 먹는 것은 기억에 남는 정도가 다르다.
결국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쌓였는지는 우리의 기억이 결정한다.
혹시 요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진다면 달력을 탓하기보다 최근 한 달 동안 처음 해본 일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자.
생각보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을 붙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많은 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처음’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